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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시인 김소연의 여섯번째 시집 『촉진하는 밤』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89번째로 출간되었다. 전작 『i에게』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자 1993년 『현대시사상』에 「우리는 찬양한다」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데뷔 30주년에 나오는 시집이라 특별함을 더한다. 전작에서 극에 달한 내면 풍경을 첨예하게 보여준 소문자 i가 또 한번 등장하는 이번 시집은 이 극단이 끝이 아님을, 이 내면의 풍경이 끝나지 않는 도정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 저자
- 김소연
- 출판
- 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23.09.14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튼튼하고 둥근 올가미를 두 손에 들고서
검고 깊은 볼모로서
p.35
울타리를 뜯는 사람의 고독 옆에 서기
전문가들의 거대하고 장엄한 편견 앞에 서서
소진시키기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마음을 무효화시키기
물 흐리기 어깃장 놓기
이면의 이면의
이면을
계속해서 들쑤시기
20년 전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
p.90
무언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
하나
하나
죽어나가는
이파리들
엉망이 되고 있다는 당혹감보다
무언가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구나
하는 불길함이 우선한다
p.104
너무 많은 말이 밤으로 밤으로 밀려갑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들과 하나 마나 한 말들이
밤으로 터덜터덜 걸어갑니다
어느 지점까지만 헤아리다 만 생각들이 어제처럼 또 그제처럼 밤에게 도착하고 있습니다
(…)
너무 많은 속엣말이 한밤중으로 먹구름처럼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그들이 했으면 좋았을 말들과 꼭 하겠다고 다짐해온 말들이 어지럽게 밤의 골목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밤은 오늘도 성긴 그물처럼 그 누구의 말들도
건져 올리지 않은 채
아무것도 아는 바 없다는 듯 매끈한 뒷모습을
하고 저편으로 나아갑니다
p.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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