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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신달자 시인의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스물에 등단한 이후 쉼 없이 시를 써 온 시인 신달자가 팔순에 펴내는 시집이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시가 된다’는 평을 받아 온 신달자는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에서 섬세하면서도 통렬한 어조로 나이 든 몸의 고통을 그려 낸다. 늙어 가는 몸에서 비롯되는 찌르는 통증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시인의 하루는 몸을 어르고 달래는 일로 채워진다. 얼음과 숯불 사이를 오가며
- 저자
- 신달자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3.04.07
냉동고에는 치미는 분노와 살인적 치욕이 멈춘
채 정지되고
세상에 새면 안 되는 일급비밀이 급냉동되어
무표정하게 굳어 있고
하나의 서랍엔 비상약이 수북하게 약 주인을
향해 위협적으로 수군거리고
한 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밤마다 눈인사를 하고
(…)
이런 게 삶?
전쟁 공부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
박수근 화백의 엽서 속 소가 보는 앞에서 소고길 잘게잘게 다지는 도마 위
밥이 다 되면 전기솥에서 푸우욱 치솟는 연기가
극초음속 마하 10 탄도 미사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전쟁의 핵심은 오늘도 먹는 일
먹을 걸 만드는 일
밤늦도록 평화로운 공포 속
어둠 내리면 붉은 태양 같은 따뜻한 불이 켜지는 내 부엌.
p.15~17
피딱지처럼 말라붙어 있는 것들이
오래 엉겨붙어 떨어지지 못한 격한 것들이
일제히 깃발을 들고 일어선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단풍 든 나무들이
각자 개인 사연들을 움켜쥐고 줄지어 섰다
p.30
허공 한 줌 주웠다가
후딱 손을터니 내 생이 훌렁 비워지는구나
비웠다고 생각하는 그 빈손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아직은 살아 있는 생
작은 조각일지 몰라도
너무 할 말이 많고 너무 쓸 것이 많다는
그냥 손 털고 비 맞고 서 있는 오후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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