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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나와 관계가 없거나 나를 놀라게 하지 않을 구절은, 단 한 줄도 없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년) 사후 100주년을 맞아 시 116편과 드로잉 60개를 수록한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58번으로 출간되었다.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하고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역임한 편영수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소개되는 국내 최초 카프카 시전집이다. 1부는 고독, 2부는 불안, 불행, 슬픔, 고통
- 저자
- -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4.02.10
오늘 서늘하고 칙칙하다.
구름은 굳어 있다.
바람은 잡아당기는 밧줄이다.
사람들은 굳어 있다.
발걸음은 금속성 소리를 낸다.
청동과 같은 돌에 부딪혀,
그리고 두 눈은 바라본다
넓고 흰 바다를.
p.15
석양 속에
우리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
초원의 벤치에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두 눈은 슬프게 깜빡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옷을 입고
비틀거리면서 자갈밭을 산책한다
저 멀리 언덕으로부터
머나먼 언덕까지 펼쳐져 있는
이 거대한 하늘 아래서.
p.41
마음속 이 도르래
작은 레버가
어딘가에서 은밀히 풀린다.
처음에 나는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장치 전체가 움직인다.
시계가 시간에 굴복하듯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굴복해
여기저기 딱딱 소리가 들리고
모든 사슬이 연달아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리 정해진 거리만큼
아래쪽으로 움직인다.
p.45
목표는 있으나,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설임이다.
(…)
그 땅 위로 사람이 걸어갈 것이다.
다름 아닌
발아래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위를 걸어갈 것이다.
두 발로
세계를 결합시킨다.
이러한 수고를
견딜 수 있기 위해서
두 손은 단지 공중 높은 곳에서
경련을 일으킨다.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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