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 시집 / 오로라 콜

진유고 2024. 11. 2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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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콜
시인 숙희의 『오로라 콜』은 37번째 아침달 시집입니다. 시인 백은선이 추천사를 통해 "숙희의 시 속 여성은 근래 다른 시들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의 욕망과 절망을 보여준다. 희미하고 무성적인 존재가 아닌, 냄새나고 생동감 있는 육신을 가진 여성성"이라고 숙희 시의 독창성을 짚어주셨습니다.
저자
숙희
출판
아침달
출판일
2024.03.14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선잠에 들었다 깰 때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
밤이 긴 곳에서 불면이 이어질 때
실패하기 위한 실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불 위에서 변기 위에서 초조할 때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나
먼 극지의 호텔에서 한밤중 손님을 깨워준다는
오로라 콜을
내 방에서 기다리지


p.13








주말마다 돌아가신 예술가들의 살림살이에
보태주느라
우리들의 생활비가 부족할 지경


토요일 아침은 열무김치에 계란프라이에
누룽지를 먹었고요
일요일 아침은 열무김치에 누룽지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모든 문화생활이 반값이라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엔
출근을 해야 하고요


우리가 누구누구 욕하는 거
실은 너무 부러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중학교 때 처음 알았어요
예술하는 건 돈이라고요


참 일찍 알았는데
아는 건 아무 상관 없는 거였어요
예술하는 거랑


우리는 또 시 써요
밤인데 잠도 안 자고


p.77~78








나는 울 수 밖에 없었어요
챙챙거리는 소리에 귀를 막고
밤이 길어지는 만큼
벌레들이 늘어났고
옷이 잘 마르지 않았어요


모든 착한 여자애들은 죽기 전에 지옥에 갔대
죽고 나서야 천국으로 간대
지옥은 작은 방, 천국은 작은 방 안의 작은 방
만약에 천국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야


시를 읽는다
글자 조각들이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팠지만
너무 슬프고
아무 생각 하지 않을래


접어놓은 책 귀퉁이
더욱 슬프고
기억하지는 않을래


p.80








정원을 가꾸며 고양이나 돌보고 싶다
샤워한 몸을 말리며
흘러드는 생각을 흘려보낸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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