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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문학동네시인선 81)
김현서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펴낸다. 『나는 커서』는 김현서 시인이 첫 시집 『코르셋을 입은 거울』이후 딱 10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그녀의 오랜 침묵이 괜한 게으름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듯 탄탄한 상상력과 잘 직조된 이미지가 빛을 내면서 재미의 넓이와 사유의 깊이를 맘껏 즐기게 해주고 있다.
- 저자
- 김현서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16.01.15
나뭇가지마다 쌓인
달빛의 검은 발소리
열 수도 없는 저 창으로
나는 무엇을 보려 하는가
2015년 겨울. 김현서. p.5
내 스웨터를 걸친 그림자가
조용히 매장을 돌고 있다
라일락 향기처럼
그가 남긴 흔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팝콘의 고소한 냄새 숨소리 스트라이프 무늬
카페모카
그에게 서서히 중독되어간다
쇼윈도 너머로
나 같은 마네킹이 휘청거리며 걷고 있다
햇빛에 눈물이 탄다
p.12
봄볕이 흰 구두를 신고 벚나무 옆을 지날 때
내가 한 건
꽃병의 물을 따라주듯 나를 따라주는 것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튀어나오는 풍선같은
일요일
봄볕에 깔린 먼지가 풀썩거릴 때
침울한 말들은 잠시 서랍 속에 수납하고
몸을 뒤틀며 기지개를 켜는 벚나무를 위해
이 어질어질한 4월의 바람을
차곡차곡 개키기 위해
그만이라고 소리쳐도
15년째 제자리를 빙빙 도는 솜사탕 기계 같은
시간을 위해
내가 한 건
꽃병 속에서 급성장한 아이비 뿌리를 잘라주는 것
그 힘으로
잠깐 스쳐지나간 고양이 따위를 잊기 위해
해가 지기 전까지
한순간에 모든 걸 잊기 위해
p.74
다시 봄, 너는 37세 툭탁거리는 망치
검은 비가 온다 발밑엔 파닥거리는 흰나비
몇 마리
다시 여름, 너는 까다로운 채식주의자
회색비가 온다 우린 둘 다 진짜이거나 가짜
장미와 그림자 사이, 바퀴가 되어간다
다시 가을 다시 겨울 그리고 봄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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