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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
걷는사람 시인선 71번째 작품으로 이영옥 시인의 『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가 출간되었다. 시인 이영옥은 2004년 《시작》 신인상을 받고,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사라진 입들』 『누구도 울게 하지 못한다』를 내며 현실의 사각지대를 그리는 집요한 시선과 내적 응집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8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에서 이영옥은 자기 탈각과 사물 인식이 확장되면서 한층 깊어진 감응과 사유를 드러낸다. 끝없는 자기 변혁을 통해 밝음과 어둠, 자기와 비자기, 의식과 무의식, 안과 밖, 낮과 밤, 나와 너의 이항 형질들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시세계를 선보인다.
- 저자
- 이영옥
- 출판
- 걷는사람
- 출판일
- 2022.10.30
함께 밥을 먹다가
당신이 뜬금없이 가시 돋은 말을 내게 던졌다
아팠다
(…)
가시의 주체는 가시를 키워 던진 사람이 아닌
가시에 찔린 사람이다
가시를 뺀다 해도 찔린 순간에
나는 계속 찔려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박힌 가시를 빼서
내게 던지지 않았다면
쓰라린 마음을 먹고 자란 억센 가시를 모를
뻔했다
나는 가시를 식목해 준 사람이지만
내가 아프지 않아서
당신 속에 자라는 가시를 몰랐다
p.32
카페 통유리 창 너머는 음소거된 물밑입니다
나는 힘을 뺀 수초처럼 뜻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득 찼다는 것은 수많은 바닥을 가졌다는
말이지요
넘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커다란 저수지입니다
진흙 바닥에 사는 가물치 한 마리를
알고있습니다
불빛 없는 미래를 더듬어 보는 것은
의심했던 길을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보지 않고 듣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퇴화하는 생물의 기분이 수압처럼
죄여 옵니다
p.52
비누가 닳고
비눗갑의 집착도 없어질 때쯤
비누는 비누의 삶을 빠져나간다
더러운 하수도를 지나
비누의 지난날은
정수장 바닥에 가라앉아
마음에 잔뜩 인 거품을 흘려보낸다
p.104
서운해하지 말자고 마음먹으면 더욱 서러워지던 저녁, 물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다 보면 떠나는 일과 돌아오는 일이 한 몸인 것을 알겠다 소리 없이 흘러간다는 것은 시간의 모서리에 뜨거운 그대를 물려 놓고 나를 옮겨 오는 일이었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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