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형 시집 / 무빙워크

진유고 2024. 11. 14.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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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워크
36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신수형의 『무빙워크』가 출간됐다. 신수형은 이번 첫 시집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이다. 시인 안희연은 신수형의 첫 시집을 “완벽한 겨울 시집”이라고 평한다. 최소한의 언어만으로 백지를 채워나가는 신수형의 시가 겨울나무와 닮았기 때문이다. “선명한 사실”이 되기 위해 “최소한의 동작만” 하기로 한 사람의 독백이라는 추천의 말대로, 거의 사라지려는 듯한 존재들을 붙잡고 있는 그의 시를 읽는 경험은 마치 따뜻한 물 한잔을 앞에 두고 침묵의 대화를 나누려는 티타임과 같다. 이는 지친 자신의 영혼과 마주 보는 시간이다.
저자
신수형
출판
아침달
출판일
2023.12.20
창밖을 본다
모두 지나가는 중이다

2023년 12월 신수형










오래된 탁자 위에
오래된 주전자 그 옆에
오래된 컵


이제 다 오래되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문제들만이 남아 있다


언젠가 한번 문을 밀고 나왔는데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


언젠가 한번 문을 밀고 나와서
물이 끓는 것을 보고 있다


모르는 곳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듣고 있다


p.18~19









오늘 아침 눈을 뜨자 책상 위에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다
흰 점 검은 점 얼룩얼룩한 돌멩이가


어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돌멩이에게 말한다
다시 봄이 온 줄 모르겠다고 돌멩이에게 말한다
컵에 가득 차 있는 검은 커피에서 해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곧 밤이 올 것만 같다고 돌멩이에게 말한다


언제부터 있었니
무엇을 보았니


돌멩이는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나는 돌멩이에게 말한다
돌멩이에게 묻는다


p.58~59








월요일엔 숨을 쉬고
화요일엔 눈을 뜨고


그다음은


모두 하얗게
부풀어 올라 노래했다


어떤 얼룩인가를, 지우기 위해
춤추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듯
가볍게 발을 바꿔봐요


오른발과 바뀌는 왼발의 순간들을
계속 지워봐요


p.68







벚꽃이 피어 있는데
무엇이 피어 있는 건지 오래 올려다보았다


벚꽃이 떨어지는데
무엇이 떨어지는 건지 한참 머물러 있었다


무엇이 피었다가
무엇이 날리는 건지


무엇이 엄청났던 건지
무엇이 한꺼번에 사라진 건지


밤은 아무 내용도 변경하지 않았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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