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 시집 / 하이햇은 금빛 경사로

진유고 2024. 11. 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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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햇은 금빛 경사로
나혜의 『하이햇은 금빛 경사로』가 38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독립 문예지를 비롯한 여러 문학 프로젝트에서 활동해온 시인 나혜의 첫 시집으로, 「스틸」 외 4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인 배시은은 나혜의 시를 두고 “아름답게 비틀린 한 치 앞의 미래”라고 말한다. 나혜가 그리는 아름다운 시의 풍경이 미래를 향해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일상을 파괴할 듯이 육박해오는 현실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나의 미래는 그것이어야 한다”라고 시인이 선언할 때, 이 무수한 웅성거림이 가득한 시의 공간은 대결이 벌어지는 링 위이거나 동질감을 느끼는 무리들의 파티장이 된다.
저자
나혜
출판
아침달
출판일
2024.05.03
알아버렸다 모른다고 할 수 없다
두려운 일이다

p.53







나뭇가지를 모아 한데 넣고
작은 불을 피워
일어나는 것들은 다 찢어가며 달리고 싶다
닿고 싶다 전적으로 축복하고 싶다 축복을
사고 싶다

p.81








체념했다
단 한 줄 썼다
얕은 강물에 박힌 벽돌을 봤다
다리밑에서 물의 그림자를 본다 불 같은
시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p.96








이겨낸다
해야 할 것을 하자
더 이상 찾고 싶지가 않다


정착을 기대하고 모은 살붙이들, 그러나 쓰레기들, 월세, 쓰다 만 메모지, 반료묘의 화장실 냄새, 하루도 빼먹으면 안 될 약봉지, 오늘의 밥값,
친구들의 안부 전화, 사진, 팔려고 내놓은 자전거


잃어버리는 일은 반복해서 배웠으나
잊는 일은 배우지 못한 문외한


p.139~140







진눈깨비 내리네


까만 창
가득 채우면서 내리네


눈과 눈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을 본다


눈과 공간은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가
사이,
눈은 혼자 떨어지는 것 같다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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