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시집 / 나의 다른 이름들

진유고 2024. 11.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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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른 이름들
조용미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조용미의 시를 무질서한 이 세계에서, 우주와 조응하는 보편적 유추의 흔적을 묻힌 비밀처럼 찾아내고 감추어진 상징으로 구축하고자 애를 쓰는, 마치 신 앞에서 피조물이 올리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은, 명상과 주시의 파장을 구현하려 하는 것과도 같다고 평하고 있다.
저자
조용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6.07.29
처음의 꽃이, 지고 있다


저 커다란 흰 꽃은 오래도록 피어 천 년 후엔
푸른 꽃이 되고 다시 쳔 년 후엔 붉은 꽃이
된다 하니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p.14








봄이 다 소진되었다 생각하니 죽음과도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삼나무 원목 발판에서 은은한 삼나무 향이 난다 발판을 책처럼 들고 나무 향을 읽어 본다
깊고 어두운 초록이 넘실거리는 삼나무의 향

p.20








나의 마음 속에는 늙은 슬픔이 살고 있다
알지 못하는 어떤 한 사람이 살고 있다
분명하다 나의 마음속에는 알지 못할 인격의
고통이 함께 숨 쉬고 있다
나의 숨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그는 평생 나를
괴롭혀왔다 알지 못할 고통이 웃고 있다 나의
몸 속에는

p.41









무얼까 파국으로 치닫는 이 느낌은


새벽과 밤의 한기, 폭우와 한낮의 갑작스러운
햇빛이 공존하는 이 낯선 곳에서의 날들은 나의 괴로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


다만 나쁜 꿈속으로 빨려 들지 않기 위해, 다만
길을 가다 물속으로 걷지 않기 위해, 다만
포근한 어둠을 너무 가까이하지 않기 위해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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