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강 시집 /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진유고 2024. 11. 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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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학동네시인선」 제26권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2006년 겨울 《시와세계》로 등단한 저자가 6년 만에 펴낸 첫 번째 시집이다. 경험적 일상을 기록하기 있다기보다 일상의 어떤 단면들을 통해 현실 너머에 있는 시적 환상을 침해하고 들춰내는 동시에, 들춰진 약간의 시적 환상만을 허락하면서 너무 많은 시적 환상이 일상 전체를 완전히 삼켜버리는 것을 간신히 저지하고 있는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적 환상과 일상 사이의 잠정적 휴전 혹은 잠재적 전투 상황을 담아낸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노웨어 보이’, ‘마르고 파란’, ‘12월주의자들’, ‘트랄랄랄라’, ‘못과 들국화’, ‘폭설 내리고 겨울 저녁’ 등의 시편을 모두 3부로 나누어 담아냈다.
저자
김이강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2.09.25
해수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판을 지나 걷는다.
아주 단순하게
끝없이 걸어가는 일.


2012년 9월 김이강. p.5








바람부는 날에 알게 되었다
슬픔에 묶여 있는 사람들의 느린
걸음걸이에
대하여


p.41








파산한 엄마가 빨간딱지를 보며
맥없이 웃던 저녁
외할머니 지어준 튼튼한 집이
창백하게 식어가던 저녁
나는 말없이 피아노 뚜껑을 열고
피아노를
치다 말곤 말했지
엄마 피아노 조율을 좀 해야겠어요
피아노 소리 슬어가던 저녁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나직한 문장들이
자꾸만 넘어져
피 흘리던
저녁


p.74








모든 게 끝이 있지
응 모든 게 끝이 있지
스무 살처럼 푸른 나이도 푸른 관념도
푸른 희망도
응 모두가 희미해지지
붉은 고통도 선명한 사랑도


p.76








당신은 갑자기 검은 가루 인간이 되어
흩날리기 시작한다
신비롭지만 서글프게 세상은
흩어지기 직전의 분말일 뿐이었는데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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