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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뚫고 지나갔던 공기가 다시 모이고 뚫고 갔던 몸이 다시 온전해지기까지” 고통과 상처 위에 돋아나는 '너와 나'라는 감각, 부스러지고 깨어진 세계를 메우는 회복의 언어
- 저자
- 손미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24.08.29
크레이프 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었지
층층 쌓인 수백 가지 내가 있어서
겹겹이 쌓인 슬픔이 있어서
변산반도에서 사진을 찍을 때
층층 굳어진 바위 앞에서
바퀴에 깔린 생물들처럼
납작하고 딱딱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
케이크를 찌르던 포크가 멈춘 어떤 층
거기에 갇혀 있는 마음
못 나간다고 믿으면 정말 못 나가는 거야
초를 꽂고 불을 붙여도 녹지 않는 곳이 있어
어떤 층이 진짜일까
내가 믿고 있는 무수한 층들
내가 오랫동안 갇혀 있는 계단
p.50~51
나는 걸어가고 비는 나를 찌른다
가로와 세로
이렇게 직물이 생긴다
지혈하려고 반복해서 누웠던 몸에는
모양이 찍혀 있다
나는 이쪽으로 걸어가는데
비와 방향이 달라서
헤어질수록
촘촘한 형무소가 된다
우리가 마주치지 않으면서
가로로
세로로
걸어갈 때
해가 질 때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우리가 더 촘촘해질 때
길이 엉켜서
지날 때마다
나는 사람을 긋는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교대한다
가려던 내가 다시 돌아와
주저앉고 마는
이, 직물
이, 부적
지나간 사람은
왜 다시
나 때문에 우는가
선을 지키면서
넘어오지 않고
왜 거기서 지켜보는가
매일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빛 시선 실밥
촘촘해진다
선을 긋고
선을 넘나든다
나는 내려가고
너는 가로지른다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 엉켜서
밧줄처럼 뻑뻑해진다
p.89~91
전원주택을 지나는데 이층 서재에서 고양이가
나를 내려다본다 따뜻한 고양이가 날 본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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