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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릭의 《내려오는 모습》은 1980년에 출간됐다. 시인이 발표한 시집의 순서로서는 세 번째다. 시인이 시집을 묶고 난 이후에 새로 시를 쓰면서 새로운 시집을 엮는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지만, 시인들의 작업은 일직선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세 번째 시집에 실린 시들 중 많은 부분은 《습지 위의 집》을 묶던 1974년에 썼다고 한다. 시인은 역시나, 오르페우스처럼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 인물들, 말을 하기 위해 오는 넋을 생각했다. 이
- 저자
- 루이즈 글릭
- 출판
- 시공사
- 출판일
- 2023.11.08
소리 하나. 그리고 쉬익 위윙하며
집들이 제자리로 미끄러지는 소리.
그리고 바람
결이 동물들의 육신 사이로 지나고-
하지만 건강하다는 걸로 만족 못 하는
나의 육신은- 왜 다시 햇빛의 화음 속으로
튀어 올라야 하는지?
다시 똑같아질 것이다.
이 두려움, 이 내향성,
그러다 나는 그 들판으로 내몰리겠지,
무방비로
흙에서 빳빳하게 나오는 그 자그만 덤불로
뿌리의 뒤틀린 흔적을 따라가며,
심지어 튤립, 붉은 발톱으로.
그러다가 그 상실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모두 감당할 수 있어.
p.13~14
육신의 외로움을 생각해 보라.
그림자로 주변을 단단히 묶고
한밤에 추수 끝난 들판을 질주할 때.
그토록 긴 여정.
멀리 있는, 마을의 떨리는 불빛들은 벌써,
행렬을 살피면서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멀리 있는 것 같은가,
식탁 위에 묵직하게 놓인
빵과 우유들, 나무 문들.
p.17
해질 무렵 나는 거리로 나갔다.
태양은 차가운 깃털 드리워진
납빛 하늘에 낮게 걸려 있었다.
이 공허에 대해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p.20
거울 속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궁금해
너무 아름답다는 게 어떤 건지
또 당신은 왜 사랑을 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자르는지, 눈먼 사람처럼
면도를 하는지, 당신은 내가 바라보도록
놔두는 것 같아, 그래서 더욱 격렬하게
등을 홱 돌리네,
아무 망설임 없이 경멸하듯이
살을 어떻게 문지르는지 내게 보여 줘야 하니,
마침내 나는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네,
피 흘리는 한 남자로, 내가 열망하는
어떤 상이 아니라.
p.31
처음에 당신이 떠났을 때
나는 겁이 났어; 그때
한 소년이 길거리에서 나를 만졌지,
그 아이 눈이 내 눈과 비슷했어,
비통하고 맑았지: 내가
그 아일 불렀지; 내가 그 애한테 말했어
우리의 언어로,
하지만 그의 손은 당신 손이었고,
너무 부드럽게 죽일 듯한 주장을 했지-
당신들 중 누구를 내가 불렀는지는
그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
상처가 너무 깊었으니까.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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