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시집 /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진유고 2024. 11. 2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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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어느 날 사랑이 온 것처럼
어느 날 사랑이 가겠지


그걸 예감하다 덜덜 떤다


일어나지 말렴
엎드려 죽은 척하렴


(…)


몸을 사랑한다는 건
영혼의 외투를 사랑한다는 뜻이야
밤마다 침대에 엎드려 흔들리는
영혼의 외투들,
보렴
각자의 방에서 느리게 낡아가며
우는 외투들


p.21~22







지독한 것은 흐르지 않는다

p.89








좋았던 일.


작은 일.
아주 작은 일.


햇볕을 쬐며 강가에 앉아


돌멩이가 조는 걸 바라본 일.


잠자리가 날아오른 일.


손목에 앉은 일.


다시, 날아간 일.


p.121









바구니에 놓인 사과, 사과, 사과들.
붉은 채점,
그건 시간이 흐르지 않고 쌓인다는 뜻이야
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지 한자리에 쌓이다 분처럼
내려앉을 뿐


(…)


진실을 탐한다는 건 편안해질 수 없다는 말
고통으로 침대를 적시고 바람으로 옷을 해
입는다는 말


진실로 이루어진 가옥에서
오래전 당신의 입술 살피다
당신 위에
분처럼
쌓이다
쌓이다
나는
흩어지겠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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