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극 시집 / 이별은 그늘처럼

진유고 2024. 11.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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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그늘처럼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 2003년 《유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남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별은 그늘처럼』이 걷는사람 시인선 9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장년의 저녁, 그 혼돈의 안팎 풍경”(김경수 발문)이란 표현처럼 김남극 시인은 강원도 봉평의 산협(山峽)에서 인간이 늙어 가며 겪어야 하는 이별과 설움, 육체의 아픔과 정신의 처연함에 대해 써 내려간 60편의 시를 책으로 엮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이별과 잊힘, 그 쓸쓸함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애정과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시편들은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시인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 산협의 오솔길 사이로 눈이 내리고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성장해 도시로 나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중년의 사내가 나타난다. 이 산협의 마을에는 중장비 일을 하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린아이도 있고 하루 종일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에서 돌아와야 하는지”(「늦은 저녁」)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세상에서 “고단하고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니/미움과 분노와 서러움과 서글픔”(「저녁에」)으로 잠을 못 이루는 중년이 있고, “‘내가 이러려고 널 오라고 한 게 아닌데’”(「산거ㆍ12」) 혼잣말하는 병든 노모가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시인에게 세상살이는 수수께기 같다. “세상에 웬만한 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묘하거나 신비로운데”(「눈썹」) 자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면 하찮은 생활이 먼저 보이고, 자려고 또 누우면 “양손을 이리저리 휘둘러도 가려운 곳에 닿지 않는”( 「내 등이 너무 멀다」 ) 상황에 삶이 아연해진다. 발문을 쓴 김경수 문학평론가는 그런 장년의 삶에 대해 “온갖 종류의 애증의 감정들, 본말이 전도된 듯한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과 함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경험과 감정에 맞닥드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 “이런 요동치는 안팎의 환경에 더해 질병이나 육체적인 불편 같은 것마저 떠안고 가야 한다면 장년의 위기성은 더더욱 배가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년기는 어쩌면 성인기의 문턱에서 맞는 사춘기에 버금가는 문제적인 시기”이며, 김남극이 그려낸 장년의 풍경은 곧 자신이 걸어가야 할 운명의 길이며, 시인은 주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톺아봄으로써 그 운명을 넘어서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인생의 슬픔을 초월하기보다는 그대로 응시하려는 김남극의 태도는 시에 살을 붙여 꾸미려 하지 않는 의지와 연관되어 있다. 이를 테면 “마당 하나 횡단하기 힘들어 지친 지렁이를 보다가/그 하찮은 생의 거룩함”(「저녁에」)을 발견하는 것이나, “시집올 때 해 온 열두 동이들이 옥수수술의 그 찰진 맛을/이젠 보지 못하고 떠나겠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쉬운 것은 아쉬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그대로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추천사를 쓴 전동균 시인은 이 시집이 “산협에 살며 장년에 접어든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과 자녀와의 이별, 삶의 상처와 고독과 그리움을 매개로 사람살이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진솔함은 단순히 세상을 보여 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과 세상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관통하는 통로가 된다”고 말한다. 현란한 수사를 붙이지 않고 자신과 산협의 거울을 통해 소박하고 귀한 시의 언어를 보여 주는 시집이다.
저자
김남극
출판
걷는사람
출판일
2023.09.27
죽음으로 이별하는 일이 잦다.
그래도 이별은
익숙하지 않다.
그대의 얼굴은 아련하고 흐려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혹한 내가 두렵기도 하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기로 한다.
나무를 경배하고 꽃을 숭배하면서
또 몇 년을
살아 보기로 한다.

2023년 가을. 김남극








교토 어느 후미진 민박집 다다미방에서
술로 잠을 청했는데


새벽에 어머니가 오셨다
참 잘해 줘서 고맙다고 내게 말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나는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 태어나시라고
엄마를 사랑해 주는 부모를 꼭
만나시라고
평생 잘 안 들리던 세상 소리도 잘
들으시라고
말씀드리고는 크게 크게 울었다


p.12







벽에 돈벌레 한 마리 붙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얼마나 돈이 궁했으면 저 볼품없는
곤충에게
돈벌레란 이름을 붙이고
얼마나 희망을 걸 일이 없었으면
저 하찮은
미물에게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가난을 물고 멀리 가라고
돈을 물고 어서 오라고
빌고 빌면서 저 벌레를 살뜰히도 돌봐서
안녕한 곳으로 모셔다드렸을까


나도 그 옛날 어른들처럼
돈벌레를 조심조심 안방으로 모시고는
거실에 나와 마당을 내다본다


이젠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어머니가
달빛 아래서
돈벌레처럼 주무신다


p.16~17










저 나무 그늘로 새가 날아갔다


저 처마 그늘로 그는 사라졌다


저 산그늘 아래로 그녀가 사라졌다


나만 남았다


그늘은 자꾸 내게 이별을 원한다


그래서 이별은 그늘처럼 내 발밑까지
왔다


그늘에는 그늘이 없다


다행이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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