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집 / 아름다운 사람 하나

진유고 2024. 10. 10. 10:43
반응형
SMALL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르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면,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주네, 산



이승의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움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을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제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주네, 산산산



p.13









사랑하는 사람이여 세모난 사람이나
네모난 사람이나 둥근 사람이나 제각기의 영혼 속에 촛불 하나씩 타오르는 이유
올리브 꽃잎으로 뚝뚝 지는 밤입니다


p.26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픔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p.34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p.73











반응형
LIST